얼마전 아내가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말을 무심히 꺼냈다. 당시에는 마음이 끌리는 뮤지컬이 없어서 덮어두었다. 그러다 2022년 말, 한일 교류와 관련된 기획에 합류하게 되면서 한국과 일본에 관련된 키워드를 많이 검색하게되었다. 그래서일까 SNS에 영화 ‘영웅’에 대한 홍보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반사적으로 댓글을 보았는데 뮤지컬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검색해보니 집과 가까운 LG아트센터에서 예매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전 아내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예매까지는 하지않았을 것 같은데 아내의 바람, 일 때문에 검색한 키워드, 가까운 장소와 같은 우연이 겹치면서 긍정적으로 예매를 검색하게 되었다.
또, 예약하는 과정에서 정성화 배우님 날짜에 맞춰서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설날 연휴가 아닌가. 많은 명분이 겹치면서 결제까지 물흐르듯이 이어졌다.
LG아트센터의 웅장하고 깔끔한 점은 순수하고 숭고한 정신이 생각나는 뮤지컬 ‘영웅‘의 이미지와 매우 잘 어울렸다. 만약 충무로나 대학로의 오래된 극장에서 공연을 했다면 기대감이 떨어졌을 것 같다. 기념 촬영이나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라인 같은 것이 없어서 동선이 불편하긴 했지만 기대감을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동선의 불편함은 직원 교육의 필요성이 느껴질 정도로 ‘영웅’의 인기가 높았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는 매우 깔끔하고 좋은 인상을 남겼다.
객석으로 들어가면 기대감을 높여준다. 밴드가 입과 손을 풀며 내는 악기 소리와 넓은 공간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시청각을 자극하는데 이는 공연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우리 부부는 2층에서 보기로 해서 그런지 소리와 공간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나름 춤추며 무대에서 보낸 시간이 있다보니 막눈과 막귀는 아니라고 자신한다. 그 덕분인지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부분을 살피면서 공연을 보게 되었다. 실수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공연을 보는 내내 숙련도가 높아서 매우 놀랐다. 웬만큼 연습이 된 공연이라도 구석구석에서 실수나 꼬임이 하나둘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추측컨데 극장의 하드웨어가 워낙 좋아서 배우님들이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대 뒤에서 움직이는 스텝과 장비들의 동선은 배우에게 민감한 사항인데 이 공연에서는 그런 불안감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하드웨어를 믿고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 아닐까 싶다.
또 연출에서도 굳이 신경 쓴 듯한 곳들이 몇 군데 보였다. 공연 초반 게이샤들이 부채 춤을 추는 장면이 그러한데 남성 군인과 여성 게이샤의 무대를 반으로 분리시켜 연출한 것은 당시 여성 차별적인 사고 방식을 잘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다. 1차원적인 연출로 생각한다면 무대를 위아래로 나누어 위쪽이나 아래쪽에서 춤을 추고 그 반대에서 남성들의 연기를 연출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공간을 상,하수로 반반 분리해서 배우들이 섞이지 않게 분리하였고, 여유롭게 한잔 하는 남성과 온힘을 다해 춤추는 여성의 대비는 공연의 시대적인 배경을 현실적으로 와닿게 해주었다.
중간중간 밴드가 배우의 호흡을 보면서 연주 속도를 조절해주는 점, 밴드의 연주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에 맞춰 앙상블을 맡은 분들의 동작 카운트도 함께 따라가는 점이 인상 깊었다. 공연 시작부터 보여주었던 하드웨어의 정밀함. 의상의 완성도, 연주, 구석진 배우들까지 섬세하게 움직이는 점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이지점에서 ‘아. 이 공연은 영혼을 갈아넣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후반 열차 씬은 ‘역시 영혼을 갈아 넣은 게 맞구나’ 싶은 트릭도 있었다. 샤막을 활용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건 내가 앉은 자리에서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이번 공연은 댄스 공연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도 명확히 보여주는 공연이기도 했다.
감동 외에도 배울 점이 많았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몇 명의 배우가 연극적인 발성이 너무 강해서 대사 첫소리마다 터지는 발음이 나오고 있었다는 점 정도이다. 이 점도 어찌보면 너무 열심히 해서 생기는 아쉬움이고 나처럼 눈과 귀만 높아진 불편러들만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아내는 그런 점을 전혀 몰랐다고 하니 내가 예민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공연 후반에 어머니의 노래는 내 작은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하였다. 어머니의 노랫말과 감성은 나뿐만 아니라 중년의 신금을 울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이 공연은 기립 박수를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나도 커튼콜 내내 끊임 없는 박수로 보답했다.
한일교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로서는 한일의 수평적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지도자로서 인상깊었던 점이 있는데 배우들의 숙련도와 태도였다. 역할과 관계없이 공연에 관여한 모두가 같은 수준의 프로였다. 지도자로서 인재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균형잡힌 공연을 내 평생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공연은 항상 특출난 의상이나 배우와 같이 무언가에 의지하거나 무언가 하나 큰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기획단계부터 꼼꼼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에 공연이 끝나자마자 이 공연을 잊지 않으려고 프로그램북을 샀다. 공연을 보고 MD 상품을 산 적이 처음이다. 서태지 콘서트에서도 기념품을 사지 않았던 나다. 그러니 이 공연에 참여한 분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뮤지컬 ’영웅‘은 표값이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소재가 좋고 작품성도 좋았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롱런하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
작성자: 김정원(bboy fr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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